김영하 30주년 기념 산문선
| 평점 | ★★★☆ |
| 한줄평 | 이런 책을 낼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
김영하 작가의 30 주년 기념으로 만든 지금까지 여러 작품에 실렸던 글들을 모아 만들었다. 이런 책은 아마도 처음인데, 이런 식으로도 책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노래로 치자면, 리메이크라고 할 수 있을텐데, 원작자가 여러 작품에 실린 글들을 가져와서 만든 것이니 정확히말하면 리메이크라고 보기도 힘들다.
저자의 작품을 읽었던 독자라면 전혀 새로울 것이 없겠지만, 나 같이 처음 접한 독자로서는 모든 것이 새롭다.
어쨌거나, 그동안에 쓴 글들만 가지고도 이런 책들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작가인생 30년이 된 저자는 성공한 사람이다.
여러가지 주제의 글들 가운데, '여행의 이유' 라는 책에 실렸던 글들을 재미있게 읽었다. 중국비자를 받지않은 이유로 추방당했던 에피소드.
그러면서 여행과 인생의 닮은 점을 말한다.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떠나지만, 여러 일들을 겪으며 애초에 목표한 것들 대신 예상치 못한 것을 얻어 돌아온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기억에 남는 구절
스티브 잡스라는 천재는 스마트폰이라는, 이름도 그럴싸하고 모양도 근사한 멋진 물건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그런데 이 앙증맞은 전자제품이 책과 신문, 잡지, 눈앞에 앉아있는 친구등이 사이좋게 나누어 갖던, 시간이라는 희소한 자원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카페에 모인 친구 넷이 말없이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은 이제 세계 어디에서나 목격되는 풍경이다. 이제 가난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자기시간을 헌납하면서 돈까지 낸다. 비싼 스마트폰 값과 사용료, 구독료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부자들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제공한 시간과 데이터, 돈을 거둬들인다. 어떻게? 애플과 구글, 아마존 같은 글로벌 IT 기업의 주식을 사는 것이다.
한번의 여행에서 모든 것을 다 보아버리면 다음 여행이 가난해진다. 언젠가 그 도시에 다시오고 싶다면 분수에 동전을 던질 게 아니라 볼 것을 남겨놓아야 한다.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정해진 일정이 무사히 진행되기를 바라며, 안전하게 귀환하기를 원한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그야말로 '뜻밖'이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각성은 대체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