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평점 ★★★★
한줄평 국내 뉴스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다른 시선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볼 수 있었다

미국-이란 전쟁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는 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그곳에서는 총성이 울리고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단지 더이상 주목하지 않을 뿐이다.

저자는 러시아에서 공부한 러시아 전문가로서 누구보다도 이 전쟁을 객관적으로 보기위해 노력했다. 각 챕터마다, 그리고 책 후반부에 두툼한 참고문헌의 목록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 전해지는 관련 소식은 거의 대부분 서방의 언론을 그대로 전파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이건 미국-이란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여서, 국제뉴스의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국내 환경을 고려했을 때, 저자의 주장은 서방의 시각에 경도된 사람들에게는 무척 불편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참고문헌'이라는 최대한의 안전장치를 강구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 전해진 뉴스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 이 책은 새로운 시각을 갖게했다. 2022년에 전쟁이 발발했지만, 사실은 2014년에 발생한 크림반도 문제가 시초였다는 점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이어져온 러시아와 나토(서방과 미국)사이에 문제들까지. 양측 모두, 주장에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이 전쟁은 5년이 지난 지금도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전쟁이 끝날 수도 있는 기회들이 몇 번 있었다.
전황은 전쟁 초기 1년 동안은 서방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선전이 있었지만, 이후로는 조금씩 러시아가 병력과 무기의 수를 앞서면서 현재는 우크라이나 국토의 약 20% 가량을 점령한 상태다.
이 기간동안 우크라이나의 인구는 절반이 줄었고, 외부의 지원이 없으면 전쟁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미국의 지원은 끊겼고, '나토'에서도 지원에 반대하는 국가들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찬성국가들에서 지원 찬성여론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했지만, 여기에 참여하지 않는 많은 국가들(유럽, 미국, 인도를 제외한 영연방 제외)과의 교역을 통해 우회하고 있어, 실효성이 별로 없다.
게다가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인해 원유값이 올라가면서 원유를 수출하는 러시아는 반사이익을 누리게 됐다.

이 전쟁이 우크라이나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고 보는 뉴스는 거의 없다(서방에서 조차도). 이제는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가 얻은 이득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야한다.

읽고나서 드는 의문은 '과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국민들은 전쟁을 원했을까?' 였다. 종전할 수 있는 중요한 시점마다 정작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른 결정이 내려졌다.

지금은 갈 수 없지만, 2017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여행했던 나는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평화가 오길 기원한다.

말하자면 2008년에는 푸틴이 세르비아의 영토주권을 들어 코소보의 자결에 반대했고, 2014년엔 서방이 우크라이나의 영토주권을 들어 크림의 자결에 반대한 것이다. 그런데도 둘다 '우리 경우는 다르다'고 죽어라 우기고 있다.
러시아와 서방 모두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때로는 주권, 때로는 자결의 편을 자처하며 정당화의 논리를 구성해온 것이다. 이러한 아이러니 또는 내로남불이야말로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리주의 분쟁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분리주의 갈등은 탈냉전 후 가장 흔한 분쟁으로 부상했지만, 그 해결은 국제법적 메커니즘이 아닌 힘의 논리에 좌우돼왔다. 유엔 등 국제사회가 분리주의 분쟁에 특히 무력한 이유는 그것이 유엔이 기반한 두기둥, 즉 '영토주권과 민족자결 간의 충돌'을 본질로 삼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주권과 자결의 경쟁'을 해결하는 방법, 즉 분리독립이 인정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요구가 '얼마나 정당한가', '얼마나 불가피한가'에 대한 입증이다. 하지만 앞서 서방과 러시아의 내로남불이 보여주듯이, 그러한 정당성, 불가피성에 대한 판단은 늘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합의가 가능하면 왜 싸우겠는가. 그런데도 자결의 권리가 주권을 압도할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인종청소 정도의 비극은 있어 줘야 하는가. 나토의 폭격이 용인될 정도의 폭력은 발생해줘야 불가피하다고 인정되는가. 대부분의 분리주의 분쟁은 이러한 곤경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방치된 갈등은 학살이나 내전 같은 극한의 폭력으로 증폭되곤 했다. 
 
코소보의 독립이 예외적 사례로 국제적 인정을 받은 것도 거기서 인종청소에 준하는 비극이 벌어졌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아울러 서방이 '코소보와 크림은 다르다'고 주장한 가장 결정적인 근거도 바로 이것이다. 즉 '코소보에서는 실제 위협이 있었지만, 크림은 상상된 위협에 불과'했기에 나토의 코소보 개입은 정당하고, 크림에 러시아군 투입은 위법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크림에서 대량 살상이 일어났다면 러시아도 면죄부를 얻을 수 있었을까. 오히려 러시아의 개입으로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한겨례에 권하고 싶다. 정말 우크라이나를 위한다면 사실에서 출발하라. 진보지만, 러시아도 중국도 북한도 비판할 줄 아는 엄정함은 사실을 무시하거나 사실에 무지한 태도로는 얻어지지 않는다. 현재 가장 중요한 객관적 사실은 이러하다. 심각한 인구 위기로 이미 오래전부터 우크라이나는 '전쟁이 비극이면 국가는 파국'인 상황이다. 그런데도 젤렌스키를 때리면, 그런 우크라이나의 처참한 상황을 알리면, 이 비극의 진짜 인과를 따져 물으면 친러가 되고 침략 옹호자가 되는가. 한겨례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누구처럼 정의를 위해 '최후의 우크라이나인'까지 사라지는 것인가. 그때 정의는, 반전 평화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필요한 것은 사실을 억압하는 손쉬운 정의가 아니라, '사실'위에 '정의'를 세우려는 고된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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