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에게도 고양이 같은 잠이 필요하다 ======
| 평점 | ★★★★ |
| 한줄평 | 20년 넘게 여행한 저자가 그동안 쓴 짤막한 글을 모은 책. 공감가는 문장이 많았다 |
{{:book:558.jpg?nolink |}}인터넷 서점을 돌아다니다, 최애 작가 중 한명인 저자의 신간을 발견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따끈따끈한 신간을 가장 먼저 볼 수 있었다.
책에는 2003년에서 2026년 동안 여행을 하면서 적었던 글들을 모았다. 한페이지를 넘어가지 않는 짤막한 분량이다. 공감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구절을 메모했다.
나이가 들면서 여행의 방식이 달라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2003년 당시 30대에 낸 첫 책은 국내 도보여행이었다. 이후 일본, 남미 등을 도보여행한 책을 냈고 이후 40대에는 배낭여행을 했다.
현재 50대인 저자는 얼마전 다친 척추뼈 골절로 인해 여행을 자제하며 요양하고 글을 쓰는데 집중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글을 통해 저자는 자신만의 여행을 계속할 것임을 밝혔다. 시간이 흐르면서 방식이 지금과는 달라지겠지만, 지켜보는 독자로서 관심을 갖게 한다. 앞으로는 어떤 책을 낼까.
저자같은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더 많이 보여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기억에 남는 구절 =====
여행에 관한 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읽는 여행에 관한 글도 좋다. 여행을 떠나 길 위에서 읽는 여행에 관한 글도 좋다. 하지만 가장 좋은 건 막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그때 읽는 여행에 관한 글이다.
내 몸에 아직 마지막 도시의 바람 냄새가 남아 있고, 미처 풀지 못한 짐이 한편에 쌓여 있고, 배낭에는 먼 도시의 이름을 단 비행기 짐표가 붙어있고, 돌아왔다는 것조차 알리지 않아 전화는 울리지 않고, 내가 이곳도 아니고 저곳도 아닌 어딘가에 존재하는 느낌이 드는, 떠나온 곳과 돌아올 곳 사이에 서 있는 듯한 그런 순간에 읽는 글들.
그저 머물다 갈 뿐인
어째서 이번 여행은 이렇게 재미가 없을까. 다들 쌍쌍인데 나만 혼자라서? 퀄리티에 비해 가격이 너무 터무니없는 곳이라서? 이제 나이도 들고, 너무 많은 곳을 돌아다닌 탓에 어지간한 것들에는 시들해져서? 그 모든 것 때문인가.
이제 여행은 모험은 커녕 발견도 아니고, 그저 돈을 써서 얻는 소비 행위에 불과해졌다. 이곳에 온 이들은 가족 또는 연인과 휴양을 왔을 뿐이다. 친구를 사귈 이유도 없고, 현지인의 삶 속으로 침투하고픈 욕망도 없다. 그저 이국적 환경을 배경으로 깔고 안락하게 머물다 갈 뿐. 그러니 얇은 지갑을 들고 다니는 나 같은 이는 환영받지도 못하고, 외로울 수밖에. 인정해야만 하는 걸까. 시대가 변하고, 여행자들이 변했다는 것을. 지난 10년 사이에 너무도 달라져버렸다. 나만 그 변화한 환경과 사람들에게 적응을 못 한 채 혼자 손을 내밀고 있는 기분이다. 수 많은 여행자 틈에서 고립된 채로.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하다 문득 깊은 충만함이 밀려들었다. 눈앞의 나뭇잎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호수에는 쪽배들이 한가롭게 흔들리고 있다. 지난 여행의 기록을 정리하며 커피를 마시는 동안 생각했다. 이렇게 살아가는 한 나는 평생토록 가난하고 외롭겠지만, 이게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삶의 방식이라고, 그걸 부인할 수는 없다고.
돈에 관하여
살아보니 알게 되었다. 건사할 식구가 없고 내 몸이 건강하다면 산 입에 거미줄 치는 일은 여간해서는 일어나지 않으며, 없으면 없는대로 또 어떻게든 살게되고 절박한 순간에는 꼭 누군가의 호의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게다가 오십을 넘기고 나니 돈에 대해 내가 지닌 생각이 맞다는 사실을 점점 확인하게 된다. 돈은 움켜쥐려고 하면 할수록 빠져나가고, 나누고 베풀수록 내 손안으로 들어온다는 사실 말이다.
계속 나아갈 거야
4월의 카미노 포르투게스. 인간 혐오에 빠진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길이다. 한 일주일, 아무도 만나지 못한 채 혼자 걷고, 혼자 잠들다 보면 인류를 향한 박애 정신이 불타오른다. 상대가 누구든 존재만으로 고맙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인류애 최고 경지. 순례자 없는 순례길을 걸으며 깨닫는다. 인간의 모든 마음의 병이 타인에게서 비롯되듯 그 유일한 치료책도 타인임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내가 간절히 바랐던 삶은 단순했다. 쉰이 되어도, 일흔이 되어도 계속 여행할 수 있기를. 한 번의 여행이 삶을 바꾸어 놓지 않음을 알게 되어도 계속 배낭을 메는 사람이기를. 허름한 잠자리를 담담히 감수하고, 가난한 밥상에 흔들리지 않고, 대단한 모험을 하지 못해도 여행의 기쁨을 만끽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었다. 나는 그런 모습에 가까워진 것일까.
한가지는 확실했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적어도 여행지에서만큼은 불편함보다는 즐거움을 느끼는 감각을 예민하게 다듬어왔고, 스스로 선택한 이 길에서 고군분투하며 충만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것. 그러니 나는 나의 여행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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